생존기

이혼남의 자아 비판 II : Leadership + Status

싱글맨 2025. 3. 1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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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사람 됨됨이를 제외하면 남성을 판단하는 객관적 척도는 분명히 있다. 얼마나 힘이 있느냐, 어떤 여자가 옆에 있느냐, 이 두 가지다. 후자의 경우 나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니 일단 논외로 하자. 얼마나 힘이 있는지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주먹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얼마나 돈이 있느냐, 어떤 지위에 있느냐로 판단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나.

승진을 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늦었다. 보통 나보다 최소한 1년에서 3년 정도 먼저 승진한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자기 반성을 위한 기준은 항상 엄격할수록 좋다.) 임원이 된 경우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있다. 나는 분명히 뒤쳐져 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뒤쳐진 것이 괜찮은 것이 아니라, 늦게 시작했는데 뒤쳐져서 더 문제다.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썼어야 했다. 

승진 자체도 문제지만, 뒤늦게 승진한 덕분에 리더십 포지션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 더 뼈아픈 점이다. 나와 함께 일한 팀원들은 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 대한 평가권과 인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고 해서 내게 진짜 리더십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상향 평가에서 나에게 피드백을 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좋은 피드백을 준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상향 평가란이 비어 있다. 나를 리더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리더의 권한이 없는 승진은 함량미달이다.

공허하다거나 의미가 없다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조금 부족해도 승진을 한 것은 분명히 전진이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나는 아직 대한민국 회사 생활에서 리더십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1. 가까운 사람에 이유 없이 의지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가로막는다. 함께 일하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과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업무 환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일했고 게을렀다. 나와 일한 사람들이 모든 성과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서도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낭만에 취해 일했다.

2. 프로젝트 종료까지 일하는 교훈과 커리어의 성과를 맞바꾸었다. 

하나의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으로 달린 것으로 분명히 배운 점이 있다. 기술적인 챌린지들이 어떻게 펀딩을 하고, 어떻게 스러져 가는지 개인과 팀과 스타트업의 명멸을 볼 수 있었고, 학교 연구실의 한계와 장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지점이 눈에 분명히 보였다. 

이러한 교훈들이 나의 커리어와 바꿀 무게의 것들이었나. 프로젝트를 끝까지 수행해야 할 임무는 프로젝트 리더에게 있지, 멤버에게 있지 않다.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하거나 지능은 탈출순이라고 하거나 순서를 바꿔도 말이 된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할 때에 내가 일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는 점이다. 나의 기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프로젝트의 종료와 관계없이 그 자리를 뜨는 것이 맞다. 

항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지점 (The point of no return) 이라는 것이 있다. 어쩌면 나는 이 지점의 존재를 이 프로젝트의 수행과 이혼을 통해 비슷한 시기에 배운 것이다. 조직에 충성하거나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만큼이나 과제에 충성하는 것도 지나치면 해롭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회사 외적으로 진행중인 다른 일들이 있다. 무려 3년 넘게 가고 있는 이 일들. 내가 배운 교훈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니, 이것들이 내 발목을 잡는 또 다른 페이로드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준을 정해서 끝내야 한다. 올해까지, 올해까지다. 

그렇다고 돈을 모아놨느냐. 겨우. "겨우"가 현황이다. 이혼남으로서 양육비와 고정비를 지출하고 나면 저축율은 높지 않다. 저축이라고 해서 정말 고지식하게 예금으로 쌓아놓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로 투입되는 양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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