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이니 입학설명회에 다녀온 것이 두 달이나 지났다. 별도의 비용 없이 사전신청만으로 참석할 수 있었고, 장소는 인터컨티넨탈 호텔이었다. Branksome Hall Asia는 제주도에 있는 교육부 정식 인가를 받은 국제학교이다. 초등학교 이전 과정(JK, JK-Prep) 부터 들어갈 수 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인가를 받은 학교이므로 International Baccaloreate 과정을 추구하는 학교지만 국내 교육과정에 부합하도록 설계된 경로를 따라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국의 공교육이 망가진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지인들 중에 현직 중등교사, 학원 강사, 국제학교 교사 각 두 분 정도를 모시고 식사를 대접해가며 들은 얘기는 서울에서 정답을 원하면 강남으로 가라는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이었다. 이건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한 가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은 송도와 제주에 있는 인가 받은 국제학교의 경우 이 알려진 정답과는 약간 다른 길을 가는 것이므로 실제로 교수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직접 면대면으로 확인하고 학교의 학풍을 묻고 싶었다.
원래는 캐나다의 여학생 전문 학교로 출발했다는 것,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한국어와 중국어 옵션이 주어진다는 점,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을 강조하는 교육 환경이라는 점, Clan과 Extracurricular Activity를 통해 리더십과 협업을 중시하는 학풍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송도의 채드윅과 다른 점은 한국 여권을 소지한 국적자의 비율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채드윅은 일정 비율까지만 한국 국적자가 입학이 가능하다.)
모든 국제학교가 그렇지만, 등록금을 비롯한 교육에 필요한 직접 비용은 학생 1명당 1년에 1억 정도라고 보아야 한다. Extracurricular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등록금이 비싼 것 자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점으로 꼽지는 않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딸 아이를 입학시키는 것이 겨우겨우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능은 하지만, 상당한 무리를 해야한다. 보유한 자산 하나를 처분해야 학비 감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점은 분명하다. 영어에 더 쉽게 익숙해지고, 좋은 학교 환경에서 미국이나 영국 대학을 목표로 진학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질의응답까지 마치고 판단했을 때, 단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여학교로 출발한 학교다.
이건 생각보다 큰 단점이다. Branksome Hall Asia가 제주에 들어올 때, 중등 교육 과정이 아닌 JK-prep, JK, 초등과정은 남학생도 받았다. 이제 그 학생들이 한국의 중고교 진학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고, 그래서 지금 남학생에 대한 학교 인프라와 교육 프로그램 디자인이 들어가고 있다. 그 얘기는 현재 시점에 캠퍼스에서 아직은 여학생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아들은 절대 이 학교에 보낼 생각이 없다. 친구건 적이건 롤모델이건 남자 아이들은 상대방 남자가 있어야 한다. 가뜩이나 아빠가 이혼남이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은데 학교에서도 남자가 수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딸에 대해서는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적절할지는 의심스럽다. 아들의 입학 적합 여부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한 것이고, 딸에 대해서는 느낌이다. STEM 분야에 강력한 진학 동기가 있다면 고려해볼만 할 것 같은데, 그건 지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 제주도라는 위치
제주도라는 학교의 위치는 학생과 학부모의 Relocation을 요구한다. 학부모 둘 다 혹은 적어도 한 명이 제주도에 들어가 통학을 책임져야 한다. 기숙사가 있긴 하지만 고학년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움직여서 발생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학비에 플러스 알파 지출이 되는 셈이다.
이혼한 부모의 입장에서 아빠와 엄마가 따로 움직이는 구조라, 합의하에 한 부모가 제주도로 이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만약 딸이 제주도라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면 모를까. 실제로 지인의 자녀가 이 학교에 진학해 있는데, 올레길을 여러번 돌았을 정도로 제주도를 좋아한다는 점이 이 가족의 특징이다.
3. 입학 시점의 문제
그래서 어린 나이에 입학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초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입학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는 있고,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이에 들어갈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이 경우 등록금의 부담이 조금 덜 하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 환경에서 영어 사용에 적응하고 학교 문화에 안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적응이 되어야 학업 성취도 기대할 수 있다. 학풍을 고려했을 때 달랑 고등학교 3년에 해당하는 기간만 제주도에서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들끼리 친해지고 진학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1 시점에 전학가는 형태로 국제학교에 가는 것도 사실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입학 시점이 늦어질수록 자꾸 국제학교 필요한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질수도 있다. 실제로 자유 질의응답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교장에게 들은 대답은 영어를 못하더라도 일찍 입학하는 것이 영어로 수업하고 생활하는 문화에 빨리 적응하여 학업 성취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 점은 나도 동의한다.
결론: 이혼남 아빠가 푸쉬해서 보낼 학교는 아니다. 학생 본인이 강력하게 원한다면 모를까.
이건 내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내린 결론이지만, 보편성이 아주 없는 결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의 세 가지 단점이 극복 가능해야 입학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느낌적인 느낌도 작용한다. 2024년 현재 캐나다의 교육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학교 관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 학생을 입학시키려는 속물 근성 가득한 나를 포함한 학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 영상 홍보자료를 만드는 것을 권장한다. 적어도 국제학교를 보내려고 입학설명회에 온다는 것은 MIT, Harvard, Stanford를 보내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대상으로 대치동에서 학원 장사하는 사람들이 한 달 수강료 100만원을 부른는 것 아니겠는가.) 세컨 티어 미국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아무리 밝게 웃으면서 Branksome Hall Asia가 좋은 학교라고 말해도, 학부모는 이 학교를 보내면서 자녀가 서울대 이상을 가길 원한다. 학교에서 교육 이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 학교에 보낸 학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서울대에 가는 것은 실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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