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는 남자의 옷 중에 가장 입기 어려운 종류의 옷이다. 상의에만 한정하고 봐도, 차라리 자켓이나 코트는 외투이기 때문에 각이 잡혀 있고 적절히 몸매를 가려주지만, 셔츠는 그렇지 않다. 남자의 옷에 대해 얘기하면서 너무 고급 과정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것 같지만, 남자의 셔츠는 그 남자의 몸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해준다. 티셔츠와 드레스 셔츠를 가리지 않고 전부 해당된다.
남자의 셔츠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넣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벨트 위로 드러나는 셔츠의 라인이 깔끔한가. 배가 나온다면 쉽지 않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배가 나오면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셔츠가 벨트 위로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두어 시간 지나서 셔츠 라인이 망가지거나 화장실만 다녀와도 불편하다면, 아직 살을 더 빼야할 때다.
드레스 셔츠보다 티셔츠가 어렵다. 드레스 셔츠는 두께가 좀 있을 수도 있어서 칼라만 잘 살아 있으면 그래도 어떻게 해볼 수가 있는데, 티셔츠는 얇기 때문에 뱃살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허리에 드러난 티셔츠를 넣입한 부분은 티셔츠의 재질까지 드러낸다. 싸구려 티셔츠를 입은 것 까지 다 드러나고, 오래된 티셔츠라 넣입하는 곳 주변에 구멍이라도 작게 뚫려 있으면 더욱 좋지 않다.
드레스 셔츠나 옥스포드 셔츠가 문제가 되는 건 셔츠도 문제지만, 바지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바지가 청바지나 면바지면 그래도 바지가 많이 움직이지 않고 버텨주는 편이다. 하지만, 수트를 입는 순간 바지의 성격이 바뀐다. 뱃살이 나오면 아주 잘 몸에 맞춘 바지이더라도 뱃살의 움직임에 따라 드레스 셔츠 자락이 더 쉽게 빠져 버린다.
물론 요새는 셔츠를 넣입하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자켓을 입을 때 긴 코트가 아니라 길이가 짧은 외투를 입다보면 빼어 입은 셔트 자락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영 보기 좋지 않다. 심지어 옥스포드 셔츠도 그냥 빼서 입는 경우도 많으니까, 상관 없다면 상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셔츠의 모양새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뱃살이 문제의 핵심이니까. 비싼 셔츠를 사는 것은 몸매가 완전히 정리가 끝나서 안정된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 섣부르게 큰 돈을 셔츠에 투자했다가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안 나는 경우가 생긴다.
아들과 약속했다. 입학식에 살 빼서 가기로. 다행히 운동을 좀 한 결과 아주 배가 쏙 들어가지는 않았어도 넣입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억지로 뱃살을 잡거나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으면 여전히 뱃살이 드러나지만, 그래도 티셔츠를 넣어 입고 걷고 자세를 바꾸는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목표는 아직도 멀다.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아빠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나이가 많지 않으면 셔츠의 넣입뺴입에 관계 없이 젊음으로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중년은 반드시 셔츠를 넣어 입어야 하는 경우가 더 자주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이 문제는 의외로 남자 건강과 스타일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오늘도 셔트를 넣어 입고 출근하면서 자꾸만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하고 긴장감을 유지해본다. 배가 나온 남자는 셔츠를 멋있게 입을 수 없고, 배가 나온 남자는 건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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