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내집마련 아파트 단독명의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

싱글맨 2023. 2. 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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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는 내내 과히 기분이 좋지 않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놀이터를 두고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문제다. 머리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면서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23년 입춘을 전후한 시점, 이혼남인 나는 이사를 단행했다. 

이사나가는 집 밖의 풍경

아침 나절 해가 드는 창에 서서 지난 5년이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간다. 이전 정권의 갖은 부동산 규제로 노심초사 했었다. 내 실력은 부족했다. 세율을 줄이려고 이전 정부의 규제 정책이 들어오는 직전일에 투자했던 지방의 아파트를 팔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빚을 1억쯤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이혼을 결행했을 때 처음에 이 집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내 명의의 청약통장을 사용해 얻은 이 집을 이혼 조정 과정중에 지켜낼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수도권 아파트 수익 실현 금액을 보태어 은행 융자금과 합쳐 이 집에 처음 입주했을 때의 기분은 단순한 내집 마련의 기쁨은 아니었다. 

내 집

그건 나의 부주의에서 시작된 이혼이라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내 소유권을 지켜낸 사건' 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진짜 영끌은 6년 전 내가 했다. 수억에 달하는 대출 계약에 서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빚을 갗다가 죽어도 내 명의를 포기하지 않고 죽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런 정신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결혼 전의 나에게 그만한 액수의 빚을 지라고 한다면 그럴 배짱이 있었을까. 

이삿짐 박스에 아침 햇살이 부서져 붉은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아트월에 뿌려지는 붉은 화소들을 응시하면 저기에 기대 놀던 아이들의 웃음이 생각난다. 정해진 날밖에 올 수 없지만, 이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같이 놀고, 선물을 주고, 아쉬운 마음에 숨바꼭질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던 날들은 내 인생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즐거움이었다. 머리로는 안다. 플러스 캐시플로우를 만들어 내려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묻어 있는 공간에 다른 사람을 들여야만 내가 산다는 현실은 마음에 자국을 남긴다. 

소파

마지막 큰 짐인 소파가 포장되고 집 밖으로 이사팀이 철수하면서 청소를 시작한다. 나는 이 집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에서 나가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관리비를 정산하고 가스비를 정산한다. 임차인과 돈이 오가고, 부동산에서 키를 비롯한 주요 기물의 갯수를 체크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숨결이 묻은 집을 잠시 떠나는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사가는 집은 당연히 더 작은 집이다. 다운사이징을 해야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를 자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화장실을 쓰면서 아들을 씻기던 즐거움과 여유로움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1주택자는 실거주를 포기해야 돈을 벌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부채지만, 내가 임대를 준 아파트는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2023년 입춘과 함께한 이사는 (추억을 뒤로 하고) 이 아파트를 자산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절반

몰딩이 좀 뜨고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 나에겐 불편함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와 주차장이 없다고 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들어 살게 된 평소보다 집이 작아졌다고 해서 내가 보유한 집을 팔아버린 것도 아니다. 불편함이 나를 깨어 있게 한다. 내가 아직 뭔가를 이뤄낸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절반의 수납 공간

원래 살던 집의 1/4도 되지 않는 수납공간에 이런저런 짐을 쑤셔 넣는다. 그래도 괜찮다. 이 집은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불편함을 제공하는 훌륭한 집이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기혼자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부부들은 공동명의로 내집 마련을 해도 관계 없다. 그래서 아파트 공동명의 자신 있는 사람들에게만 권한다를 과거에 썼다. 하지만 결혼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들도 분명히 섞여 있다. 아파트 단독명의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산 관점에서 아파트 공동명의는 그 모체가 되는 결혼만큼이나 불완전한 경제체 형식이다. 기본적으로 동업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단독명의를 권장한다. 당연히 결혼하기 2년전부터 보유하고 있어던 아파트면 더욱 좋다. 단독명의, 무조건 단독명의. 세금을 아끼려다 인생의 절반을 해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단독명의의 의미가 자산 측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단독명의의 공간을 갖는 것은 임차인으로 사는 것보다 아이들과 추억이 담긴 내 공간을 소유하기 편하게 해준다. 

덧붙이는 말: 내 생각에 한국인들은, 특히 남성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굳이 이 글을 읽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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