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남자로서의 기초적인 이미지 관리가 특히 손에 꼽힌다. 젋었을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고, 결혼할 때는 하는둥 마는둥 적당히 했던 일이다. 아주 기초적인 일들을 말한다. 체중관리, 표정관리, 면도, 손톱이나 헤어 같은 단순히 '단정한 용모'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들. 20대 때에는 그냥 속물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관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들에게 보여지면 살았다. 그것이 나의 가치를 그만큼 깎아 먹었을 것이고, 그게 내 결혼 생활의 실패에 기여한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40대에 들어선 이혼남에게 자기 이미지 관리는 필수다. 정말 기초적인 것들을 얘기하는 거다. 남자로서의 기초적인 이미지 관리, 용모와 말투, 행동하는 방식 같은 것이, 알게 모르게 사회생활과 결혼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었다. 웃는 습관을 못들인 것 때문에 공격적인 이미지와 가끔 생각나면 로션이나 바르던 정도로 지냈기 때문에, 푸석푸석한 피부를 얻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군인이나 예술가, 체대 출신으로 운동이 직업인 체육인들도, 그들의 와일드한 이미지가 무작정 거칠고 스포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들도 그 이미지를 얻기 위해 땀흘리는 현장이 아닌 곳에서 열심히 자기 관리를 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이미지 관리를 가볍게 생각했다. 옷차림이나 그루밍에 신경쓰는 것은 내가 신경쓰기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40대에 들어서면서 주변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가장 좋은 버전의 자기 이미지를 끝없이 만들고 있었다. 가장 쉬운 이미지의 활용 예가 채용면접에 입고 가는 수트가 되겠다.
하지만 수트라는 건, 단순히 옷이 아니라는 걸 의외의 장소에서 알게 되었다. 1인 법인을 시작한 입장에서 무신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갔을 때와 수트를 입고 갔을 때의 상담 내용이 어떻게 달랐는지 경험하고 나서야, 나의 이미지도 무기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 날의 은행 업무가 대출 상담이 아닌 증명서 발급이었기에 다행이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설명했다. 수트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은행가의 패션이기 때문이라고. 같은 옷을 입은 이들에게 문화적인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사업자 대출 같은 업무에 드레스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신용도가 없는 회사로서는 수트를 입고 간다고 해서, 비싼 정장을 억지로 입고 간 대표에게 안 나올 대출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건 정신자세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순히 패션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갖춰 입었다고 하더라도, 상담할 때 여유가 느껴지지 않거나, 다크 서클이 가득한 상태로 가거나,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사람의 인상이 좋기는 힘들다. 그래서 용모와 행동과 말을 포함한 보이고 기록되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느끼고 나서야, 영화 킹스맨 에이전트가 이해가 되었다. 영화의 결말과 관계 없이 왜 수트가 현대의 갑옷 (Armor) 인지, 그건 더이상 총칼이 아닌 돈이 무기로 통용되는 세상에서 은행가의 옷이 곧 현대의 무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라고 하는가.매너가 보여주는 아우라가 그 사람의 전체적인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수세에 몰릴 수록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약점이 보이면 물어 뜯고 절대로 놓지 않도록 훈련되어 있다.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셔본다.
꼭 비싼 차를 타야하고, 톰 포드를 입고, 디타 안경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이미지 관리에 동원하기 시작하면 망한다. 하지만, 예산 안에서 최적화된 버전의 나를 만들 수는 있다. 있어보이는 척을 할 필요는 없지만, 가능한 한 있어보이는 나를 만들 수는 있다. 바쁜 일을 해야한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가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은 앞으로 안할 생각이다. 생존에 다급해서 이미지 관리를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생존을 위해서 최대한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벨트 매는 법을 가르쳐주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당신께서는 절대로 벨트가 너무 남아서 한 바퀴를 돌고 남지 않도록 가죽을 잘라 벨트를 몸에 맞추고, 버튼 셔츠를 입었을 때는 반드시 셔츠와 바지의 세로 줄이 맞도록 해서 벨트의 한쪽 변이 맞춘 줄에 다시 맞도록 벨트를 매라고 가르치셨다. 우린 매번 그 규칙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내게 남자가 옷 입는 법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남자가 옷 입는 법을 가르치는 날을 상상한다. 아들에게는 당연히, 딸에게는 딸이기 때문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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