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연휴가 끝나도 함께 일하던 동료 십여명이 익숙한 캠퍼스에서 용인사업장으로 급하게 발령이 났다. 보통 달마다 정해놓고 일정한 날짜에 발령하는 인사조치와는 다르게, 발령에 대한 개별통지와 실제 인사발령과 소속 변경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전격적인 인사였다. 이동한 사람들은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 한 참 경력과 업무 역량이 최고조라고 할 수 있지만, 용인에서 하게 될 일들의 완전한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최고 경영진이 급하게 구상하고 실행한 인사의 결과로 이동한 사람들은 익숙한 업무 환경과 보너스, 인사고과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나와도 관련이 있다. 내 소속은 연초에 바뀌었기 때문에, 남아 있었다면 내가 당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이동을 앞두고 이삿짐을 싸고 있는 사람중에는 내게 농담처럼 '재빠르게 이동해서 꿀빨고 있다.'는 표현을 쓰는 이들이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문제는 이들의 반응을 임원들이 이미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새로운 직무가 임원진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이들의 반응을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아마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행동들이다. 그들은 벌써 인사조직을 동원해 태업이나 노조가입을 언급하는 직원들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임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최고위급 경영진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조직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정도라면, 중소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 황당한 일도 많을 것이라 짐작만해본다.
자, 이 일에서 내가 배울 일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회사는 직원의 쓸모에만 집중한다. (내가 사장이라도 그럴 것이다.) 동료들이 옮겨가게 된 것은 그들의 쓸모가 옮겨갈 곳에 있다고 회사가 판단해서다. 며칠이라도 일찍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동에 대해서 기준을 정해 통보했으면 좋았을 것이다라는 동료들의 말은 맞는 말이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그들의 전격적인 이동 배치가 회사의 이익에 정확히 말하면 이 결정을 내린 경영진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불합리하다는 그들의 항변은 정당하다. 그들보다 늙은 고사목들은 여전히 편안한 사무실에 진을 치고 있고, 한국 노동법의 특성상 잘라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직장인 회사가 하는 일은 이처럼 단순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현재의 소속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현 직무가 그들에게 일정 부분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필요가 없어지면, 나 또한 그들처럼 별도의 조치를 마주하게 되겠지. 그래서 지금 내가 충분히 '회사에 쓸모 있기 위해서' 현 직무를 최대한 열심히 필요한 일로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생각은 나를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회사라는 법적 공간과 밥벌이 수단 이외의 다른 옵션을 지워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회사의 입장에 내 감정을 이입해서는 안 된다. 회사는 알아서 나를 쓸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나를 쓰게 두되, 그들의 조치가 맘에 안들면 나갈 수 있도록 해두어야 한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아무리 의미 있어도 나의 결정권보다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회사는 그들의 파견 기간을 정해두고 인사고과와 보너스를 '약속했다'고 한다. 당연히 문서화된 증거는 없다. 약속 사항을 문서화해도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일로 직속 상관인 임원들은 일정 부분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 전 부서가 그들이 적절히 개입하여 중재하고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약속'을 한 임원들이 '약속한 기간'이 도래했을 때 그 자리에 혹은 그보다 높은 상위 임원이 되어 있으리라고 회사는 약속한 적이 없다. 그들의 리더십이 상했다면, 최고 경영진은 그 임원들과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다. 최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조직의 리더십이 아니라, 이사회의 의결 사항이다.
회사의 주인이 강력해질수록, 그들은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하는 것' 이 아니라, '소유하고 결정한다.' 그것이 직원의 입장에서 회사에 감정 이입을 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들은 흔히 알고 있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최대한 '일을 되게' 만들어라. 다만, 그 일이 실제로 되고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뿌듯함'이나 '일하는 맛'을 이유로 감정을 개입시켜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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