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는 건 여러 글에서 다루었다. 남자가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후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지, 사랑처럼 그런 뜨뜻미지근한 것 때문이 아니다. 2세를 위해서 사랑이 없이 결혼해도 된다. 인류의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게 유일한 옵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지불할 수 있을 때 남자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트부터 결혼과 이혼 양육비 지불까지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전부 더한 금액을 전부 소비해도 전혀 생활이 문제가 없을 때 결혼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결혼을 하지 말라는 얘기처럼 듣겠지만, 그런 뜻으로 쓰는 글은 아니다. 2세를 보고 싶다면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이고, 그 당연했던 일을 중하류층에서는 '천천히' 지불했을 뿐이다.
내가 꾸란 (코란)을 가끔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 경전치곤, 꽤 합리적인 이혼에 대한 기준과 가이드를 제공한다. 내가 일부다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헤어질 때 합리적인 수준의 금액을 지불하라는 내용이 나오는 장들이 있다.
역사상 단 한 부부도 완벽하게 동등하지 않았고, 결혼이나 섹스가 공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남자가 모든 비용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다고 상대방이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데이트나 결혼이나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만족과 안정은 그 다음에 온다.
결혼이 줄어들고 출생율이 격감하는 것은, 이걸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이미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생율 회복을 위해 돈을 쓰겠다면, 꽤나 큰 액수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느 정도 먹히기는 할 것이다. 성에 차지는 않겠지만) 이걸 알면서도 자녀를 얻는다는 목적을 계속 미룰 수는 없으니 결혼을 하면서 타협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혼의 씨앗이 뿌려진다.
이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혼이 남자에게 '잠재적 가능성'으로 인식되면 그게 진정한 문제다. 남자가 안심하고 결혼할 수 있을 떄는 '이혼해도 전혀 감정적, 신체적, 재정적으로 문제가 아닐 때'이다.
이 기준이 말도 안 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편안한 현대 사회의 생활을 너무 오래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결혼을 잘 하고, 어떻게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개인의 감정적인 문제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을 때 결혼하는 것이 맞다. 2세를 얻기 위한 경제적 적령기는 있늘지언정 생물학적 적령기는 남성에게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기준을 만족시키기 쉽게 한국 남자를 돕거나 여성을 도울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2세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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