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초등학생 아들과의 대화

싱글맨 2024. 5. 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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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커나가면서 생기는 일들은 아버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않을지'와 '반드시 가르칠 것'을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말을 하고 이야기에 논리 구조가 생기면서 이 고민은 깊어진다.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는 것은 아들이 겪는 일의 큼직큼직한 부분을 이미 아버지가 되기 전에 겪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사귐, 싸움, 배신, 그리고 대한민국 공통의 군대와 결혼 문제까지 말이다. 

솔직히 아빤 잘 모르겠다.

아들 녀석은 핑크색 킥보드를 타고 있는 누나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무리와 어울리고 싶어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잘 모르겠고, 아마 자기보다 한 살 정도 많을 핑크색 킥보드의 주인공 앞에 자전거를 대고 쭈뼛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 누나와 같이 놀고 싶었던 것 같다. 아직은 이성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나, 누가 알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닌 곳에서 주변에서 서성인다고 해서 갑자기 살갑게 놀아줄 소녀는 없다. (있으면 사실 그게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아빠의 입장이 된 내가 그 상황을 단박에 알아본 것은 다름아닌 아빠인 내가 그 짓을 이미 여러번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같이 놀자' 라고 매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던지, 아니면 네가 노는 것을 보고 다른 녀석들이 네 주변에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아들에게 별 얘기를 다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이다.) 모래 놀이터에서 네가 큰 산을 쌓아놓거나, 깊은 구덩이를 파놓았을 때, 다른 녀석들이 네 주변에 몰려드는 것을 알지 않느냐. 다른 녀석들이 네게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언제나 상책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에게 사람이 어떻게 만남을 시작하는지 얘기하다가, 아마 인간의 경제생활에 대한 첫 설명을 한 것 같다. 아들아, 미안하다. 솔직히 나는 그 누나 어디를 보고 네가 마음에 들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네 할아버지도 아빠를 보고 그런 생각을 여러번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네 자전거말고  친누나의 분홍색 디즈니 공주 자전거를 타고 그 누나 옆에 있어볼거냐는 질문에 세차게 고개를 저어 부정하는 것을 보니, 아빠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아빠는 분명히 말해두었다. 이 문제는 네가 평생 고민할 문제이고, 아빠도 여전히 고민하는 문제라고 말이다. 

You let THEM COME TO YOU for a reason.

알겠느냐. 이 문제가 없다면 아마 인류에게는 생존도 경제도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무슨 말인지 이미 이해했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네가 무릎이 깨질 위험을 무릎쓰고 왜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아빠한테 배우겠다고 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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