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이혼남 아빠의 초등학교 입학식 (feat. 네이비 싱글 수트)

싱글맨 2024. 3. 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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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 3월 입학식을 치르고 두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 되고, 유치원과는 안녕이다. 한동안 격리 조치로 입학식은 입학생만 겨우 가는 정도에서, 이제 상황이 바뀌어 다시 학교 운동장에서 모이는 입학식을 가게 되었다. 다른 부모들은 편하게 입고 나올 수도 있지만, 내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내 인생에 직접 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입학식이기 때문이다. 

급하게 수트 한 벌을 더 맞췄다. 두어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그 누구보다 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더블브레스티드 수트는 나이든 인상을 보일 수도 있고, 너무 포멀한 느낌이라 이 기회에 네이비에 싱글브레스티드로 한 벌을 더 맞췄다. 바지 핏을 잡는데 꽤나 노력을 들였다. 입학식날 착장은 네이비 수트에 신발은 블랙, 넥타이와 코트는 회색이다. 

네이비 싱글브레스티드 수트

흙먼지 날리는 학교 운동장은 오랜만이다. 학교가 꽤 오래된지라 건물은 낡았고, 아직도 90년대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일부 공간은 어째 샌드위치 판넬로 만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아들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걷는다. 가방을 멘 학생들 사이에 줄 서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들은 어색해하지는 않았지만, 아빠와 엄마가 시야에 있는지를 계속 확인했다. 가방을 빼면 코트를 입어서인지 아들의 옷차림이 나와 비슷하다. 

고통은 아들이 줄을 서서 교실로 사라지고 학부모들만 입학식장에 남았을 때였다. 낡은 철제 의자에 한 시간 동안 교장 선생의 훈화를 들어려니 힘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을 가장한 교장 훈화는,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를 반복하며 한 시간 동안 쉽없이 계속되었다. 유튜브가 아이들에게 안 좋다는 말부터 학푝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여러 사람 힘들다는 호소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듣고 있어서 힘든 것이었을까. 아들의 담임 선생이 다행히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다. 선생님에 대한 존중은 아빠로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바뀐 것이 없는 것도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는 국민의례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여전히 하지만, '조국과 민족에 몸과 마음을 바쳐' 라는 5공 이전 시절에 유효하던 문구는 수정되었다. 학생들 없이 학부모들만 있어도 차렷-경례를 여전히 한다는 사실이 초등학교 교사들의 의식 수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들의 손을 잡고 하교를 한다. 입학식이 끝난 학생들이 수트를 입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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