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한계에 절망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싱글맨 2024. 3. 22. 19:06
반응형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말에 갸우뚱한다. 세상이 누군가가 살기를 원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세상에 살 가치가 있다고 항변하기보다 그걸 증명하고자 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인간의 한계가 있다는 말에 우리는 숨곤 한다. 인간이 실수 투성이의 죄 많은 동물이라고 해서 나의 실수가 정당화되거나 죄가 사하여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계는 늘 있다라는 말을 누구나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라고 희석하면 안 된다.

상대방의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걸로 비난하려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내 한계도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대답하면 안 된다. 남의 한계나 허물은 나의 일이 아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맞다. 전자는 한계에 절망히거나 체념하는 것이고 후자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의 허물과 한계없이 나는 최고의 능력과 상품이나 서비스, 친절 (그것이 겉모습뿐이건 진심이건),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남의 한계와 속내를 일면서 그걸 모른척하거나 받아들이고. 내 할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 그건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잣대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 기준에 한참 모자란 인생을 살 것이다. (오늘 얼마나 수 많은 과오를 저질렀는가) 그리고 내 자식들은 아빠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볼 것이다. (뛰어넘으려 할 지는 모르겠다. 그건 그들에게 달렸다.)

반응형

'짧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혼은 내 문제다.  (2) 2024.09.09
휴식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가  (0) 2024.04.27
부모의 한계 Mediocre at best  (0) 2024.03.22
인플레이션2  (0) 2024.03.21
흰 머리  (3) 2024.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