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계좌에 처음으로 월세가 입금되었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좀 묘하긴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일하지 않고 번 돈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흔히 월세를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는 유튜버들의 말처럼, 극적으로 좋은 기분이 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월세를 받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월세로 생활이 가능해야 일단락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상당한 지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직장인으로서가 아닌 나에게 교육비를 투자할 예정이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도 꽤나 지출을 했다. 분명히 거주비를 아낀 셈이지만, 그런 지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계좌의 잔액을 온전히 느낄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1주택 월세 계약을 한 이유는 세 가지다.
이혼남의 입장에서 집 값이 올라야 혹은 내려야 한다는 논쟁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그건 다른 사람들의 한가한 논쟁에 불과하다. 투자금과 생활비, 양육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다.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한참 전세가가 바닥을 기고 있을 때 계약을 체결했고, 굳이 월세를 받기로 한 첫번째 이유는 현금흐름이 필요해서였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생존을 위해 임차료 입금이 하루라도 늦을 경우 나는 세입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월세로 집을 내어준 두 번째 이유는 공시가격의 하락을 예상했기 떄문이다. 세금 문제도 지켜봐야 한다. 세금 때문에 무조건 월세를 많이 받는게 좋은게 아니다.이제 29일이 되면 2023년의 아파트 공시가격이 확정될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집 값이 9억 미만으로 떨어져 줘야 한다. 그래야 1세대 1주택의 월세 수입에 대한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락폭이 얼마나 적용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전세사기라는 키워드가 뉴스란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정부에 호소하고 경매가 중단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손해가 당장 사라지진 않는다. 월세 계약의 세번째 이유는 전세 보증금을 많이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전세가가 떨어진 상황에서 전세 보증금을 받고 대출을 상환한다고 해도 이자를 내지 않을 수 있을 뿐, 계약 당시의 전세가 전망이 불투명했다. 전세 보증금 상환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향후 2년에서 4년 후의 금리를 예측하기 어렵다면 월세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지난 세월이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세상이 돌아가는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지만, 세상살이는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항상 죄고, 실수에는 댓가가 따른다. 어릴 떄는 '신용'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신용과 신의와 신뢰가 어떻게 다른지 의미의 차이도 몰랐다. 신용이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돈을 지불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이자 지급과 상환이 1분만 늦어도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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