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69시간까지 근무를 허용하는 정책으로 말이 많은 모양이다. 52시간 근무는 적어도 대기업에서는 어느 정도는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다니는 직장이 업계 1위는 아니지만 나도 곧 장기근속휴가가 나올 때가 되가니, 솔직히 대기업이 아닌 업무 환경에서 실제 근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 얘기 하고 싶은 것은 근무 시간이 아니라,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혼남이 되기 몇년 전, 나는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이었다.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유는 가방 끈이 지나치게 길기 때문이고, 그게 아주 쓸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쟁이 치열한 공채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회사'라는 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처음에 회사생활을 할 때 근무 시간의 기준은 주당 40시간 최소 근무였다. 하지만 40시간이라는 숫자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회사에 루틴하게 있는 것만으로 50시간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워낙 당연했기 때문이다.
처음 입사를 했을 때, 왜 내 이름과 인적사항을 40번이 넘게 적어내야 행정처리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원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있을 법한 전원 회의를 밥먹듯이 오전 중에 하는 것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아침 9시부터 유럽과 연결된 컨퍼런스콜에 40이 넘은 40명의 회사원이 모여 앉아 졸고 있는 것이 소위 말하는 대기업의 현실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회의를 해놓고서도 임원들이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싫어 데드라인 0.1초전까지 결정을 미루거나, 답정너식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지쳐갔다.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이.
어찌보면 나는 회사가 구시대적인 방식에 취해 일을 하는 동안 가정법원을 드나들고, 재산분할과 정식 이혼까지, 방역의 시대를 틈타 직장 외의 일거리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회사 업무의 생산성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재택근무와 52시간 근무제의 도입도 한 몫했다.
아직 세상이 변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2019년 이전의 업무 방식으로는 진짜 회사가 망할 것 같다. 당연하다. 그리고 회사는 지금까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고, 하나씩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한 때 그랬던 것처럼 PPT를 못쓰게 한다던가, 호칭을 바꾸고, 회의를 억지로 못하게 하고, 뭐 이런 수준의 대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장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이 일이 얼마나 걸리는지, 누가 필요한지, 대략적인 예산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는 현실을 안고 경쟁 업체와 시장에서 싸울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결국 회사는 일하는 인프라 자체에 칼질을 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판단을 회사에서 했다고 해서 당장 모든 불합리와 비효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회사의 일하는 방식에 손을 대겠다는 업무 타이틀로 사람을 뽑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자원했다.
며칠 동안 정부에서 노동 시간에 대한 정책을 변경하면서 52시간이던 최대 가능 업무 시간이 일정한 조건하에서 69시간까지 늘 수 있다는 뉴스가 반복되고 있다. 직장인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반복되고 52시간 사수냐, 아니면 결국 다시 노동 정책의 후퇴로 인한 노동 시간 증가가 현실화 되느냐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포인트가 아니다. 52시간을 사수해도 대다수 직장인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사회가 아직 그래도 노동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일을 하고 있는 회사의 업무 방식 변화를 보면 안도의 시간이 길 것 같지는 않다. 기업들은 이제 사람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업무 방식을 바꾸려고 한다. 적어도 다가올 아직은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 뽑지 않고, 더 적은 인원으로 같은 업무를 처리하는지를 궁리하고 있다. 그게 내가 내 시간의 70% 이상을 쏟아부어 하고 있는 일이다.
아담 스미스는 수백년 전에 분업이 바꾸는 생산성의 혁신을 이야기했고, 이제 기업들은 다시 한 번 적어도 그 정도 수준의 혁신을 원한다. 모든 업무 과정이 표준화되고, 데이터에 기반한 업무 진행과 의사결정을 도입해 업무 전반을 자동화 시키는 일이 진행중이다. 69시간을 돌려야 하는 기업들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반대편에 절대로 업무 시간을 길게 가져가지 않으려는 기업의 욕구가 있다. 잔업수당도 비용이다. 인건비의 규모에 맞추어 지출해야 하는 간접 비용은 나날이 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세금을 늘리고 세수 지출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의 긴 근무 시간은 분명히 내 이혼에 어느 정도 일조하긴 했다. 그 때문에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영향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직장인으로서 걱정해야 하는 건 다른 종류의 걱정이다.
직장인이 할 일은 이제 업무를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과정을 따지고 관리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이라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각종 크롤러와 시장조사기관의 보고서에서 모은 텍스트와 숫자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전처리하면, 직장인의 업무는 그 결과가 맞는지 틀리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 시스템이 뱉어낸 제품 개발의 결과물이 말이 되는지, 리스크는 없는지 관리하는 일이다. 즉, 일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흐름에 개입하는 일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직 표준화 되지 않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서 돈이 된다면 다시 업무 흐름을 최적화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직장인의 할 일이 된다.
이 전체 흐름에서 중요한 건, 기획자와 책임자다. 당연히 '손' 이 필요하지만, '손'의 가격은 점점 싸진다. 지금 당장은 그 '손'이 69시간이 필요하지만, 점점 적은 시간이 걸리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건 중간관리자의 업무다. 이런 상황이 계속 최적화에 최적화를 거듭할수록, 나중에는 잔업을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잔업이 없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물론 업종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건설, 오프라인 유통, 각종 서비스업, 심지어 일부 IT 업종이나 게임 개발 업종은 당장은 69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갈 수 있을까.
주변 동료들에게 경고를 하곤 한다. 이 흐름에 저항하지 말라고. 경영진에서 '혁신' 이라고 부르는 이 도도한 흐름만큼 회사에 남아 있는 고사목을 잘라내기 좋은 수단은 없다. 난 그 흐름에 꽤 찬동하고, 업무상으로도 동참하고 있다. 벌써 이 흐름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제 발로 나가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버티다가 자의를 가장한 타의로 나갔다는 점이 다를 뿐. 나는 항상 직장인이 회사를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나간 사람들이 그런 준비가 되어있었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고, 그들이 나간 것이 티가 날 정도로 그들이 했던 일이 대단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다만 회사 안에서 감지되는 분위기의 변화와 주 69시간 근무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분명히 52시간이냐 69시간이냐를 놓고 노조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할 것이다. 노조에서 이런저런 이메일이 올 때마다 나는 읽지 않고 지운다.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 그걸 읽는 시간이, 심지어 그 이메일을 지우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정도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노조가 있어서 이런저런 복지혜택이 일부 좋아지는 것도 대기업의 경우에는 사실이고, 본인들이 원한다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막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생존이 우선인 입장에서 그건 전혀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내가 회사에서 보낸 52시간 혹은 69시간이 얼마나 유효한 일이었는지다. 내 시간의 밀도란 말이다.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많이 번 것을 자랑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최소한의 시간을 일해 최대한의 돈을 벌었다는 자랑도 같은 의미에서 멍청한 짓이다. 나의 직장에서의 52시간 혹은 69시간이 내가 밖에 나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직원을 고용한다면 40시간 근무로 목표를 달성하는 사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69시간 근무를 하는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회사에서 월급외에 얻어 내는 것이 나중에 내가 할 일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근무 시간을 정교하게 따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도끼 자루가 썩는 걸 모른다는게 문제다. 어차피 직장 업무는 '내가 하는 일' 이긴 하지만, '나의 일'은 아니다. 주당 근무 시간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심 그들은 이미 직장을 나간 뒤의 삶에 대한 계획이 서 있는나 보다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분발하게 되니까.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방심을 하지 않게 되니까 말이다. 혹시나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더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지금도 나중에도 만나거나 같이 일할 일이 없는 사람들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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