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왜 지금, 남자에게 향수인가.

싱글맨 2023. 3. 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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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 투자하기로 했다. 좋은 향수를 싸게 사기 위해 가성비를 따져 알아보고, 온라인으로 여기저기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비싼 곳에 찾아가서 시향을 해보고 구매하기로 했다. 내 느낌만으로 내 이미지를 대변할 수 있는 향을 찾아내기로 했다. 아마도 결혼할 때 이후 처음으로 나는 쇼핑이라는 걸 했다. 

1층 매장에 들어서자 각종 향이 확 올라온다. 익숙한 향기도 있고, 새로운 향기도 있다. 시향지를 나누어 주는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한 편에서는 선글라스와 부츠를 알아보는 손님으로 가득하다. 내가 알고 있는 메이커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향들로부터는 일부러 멀어졌다. 잘 모르는 니치 향수들은 시향하지만, 구매를 고려하진 않는다. 

CREED 에서 멈춘다. 

CREED

익히 알고 있는 어벤투스를 레퍼런스로 시향한다. 내가 써본 적은 없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가 쓰던 향이다. 어벤투스를 쓰는 사람은 많겠지만, 내가 '그 사람이 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벤투스를 사지 않는다. 실버 마운틴 워터 같은 다른 향을 시도해보고 결정했다. 봄과 여름에 쓸만한 향으로 단순히 내가 향기를 좋아하면 결정하는 것으로. 그리고 밀레심 임페리얼 Millesime Imperial 로 결정. 

Millesime Imperial

시원한 바다가 생각나지만, 한편으로 카스테라 같은 부드러움이 있는 향이다. 다른 일에 마음을 쓰다가 향이 생각날 때쯤이면, 저만큼 아득하게 사라지는  향이다. 다소 여성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남자남자한 향이 아니다. 그리고 일부러 지나치게 남성적이지 않은 것으로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다. 나만 좋아하는게 아닌 남도 좋아하는 향기여야 하니까.


왜 지금 향수인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벗기 시작한 것은 벌써 꽤 되었지만, 이제는 직장과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선택적으로 벗을 수 있다. 어쩌면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던 지난 몇 년은 사람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향기도 나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왜 남자에게 향수인가.

남자가 상대적으로 향을 사용하는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는 그루밍을 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성에 비하면 향수를 쓰는 남성은 아직 적을 것이다. 그리고 사업장에서 향수를 사용하는 경우는 더 적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업무가 바뀌어 내 사업장이 아닌 직장에서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미팅에 들어가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내 업무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공대생 패션이 지배하는 IT 기업에서 일하는만큼 향수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게 첫 향수가 아니다.


굳이 백화점 일시불로 구매했다.. 왜? 가성비를 따지는 이에게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면세점에서 사고, 어지간하면 향 지속력이 더 긴 걸로 사지 왜? 향기를 샀지만, 그 멘탈리티를 함께 샀다. 과감하게 브랜딩에 투자하는 마음가짐, 단순 소비에서 아끼고 진짜 좋은 것에 아끼지 않고 내 주변을 항상 돌아보는 신중함 같은 정신상태말이다. 

실제로 며칠 향수를 사용하면서 그 효과를 보고 있다. 더 적게 먹고, 위생에 각별한 신경을 쓰게 되고,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더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향기가 생활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직 셀프 브랜딩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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