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이후에 아이들을 생각하면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아이들은 내가 그 동안 배우지 않은 것이나 잘못 배운 것을 교정하게 되는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혼 이후에 제한된 만남을 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아이들을 향한 마음은 더 커졌다. 하지만 내 생활이 '아이들이 전부인 인생' 이 되어선 안 된다. 아이들만 바라보고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인생을 사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이들과 나를 망치기 때문이다.
아들이 전부였던, 딸 밖에 모르던 인생을 산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이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이었나. 자식에 대한 보상심리, 과도한 기대로 충만한 경우가 많지는 않은가. 자식들에게 자기 시간과 돈을 투자한만큼 자식에게 기대하게 된다. 이 관계를 건강하게 잘 유지하는데 실패하면 자식들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 때문에 오히려 자식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들과 딸이 자기주도권을 절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길 바란다. 이혼을 결행한 이유가 '아빠인 나'의 자기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자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고 싶은 것도 그 자익주도권의 중요함이다. 그렇게 하려면, '너희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백날 말로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다. 아빠로서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자식들도 그들이 원하는대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허용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아빠인 내가 보기에 이해가 잘 안가거나, 이상해보이더라도.
이제 초등학교 문에 들어섰을 뿐이니, 아직 어린 아이들이다. 하지만 곧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찾아올 것이고, 아이들은 아빠인 나와 충돌할 것이다. 당연히 (적어도) 반은 나를 닮은 그들은 그들만의 인생을 살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전처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아빠인 나로부터도 독립함을 의미한다. 아마 나도 아이들의 독립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아빠는 왜 이혼했어요? 아빠는 왜 우리랑 같이 살지 않았어요? 아빠는 내가 필요할 때 왜 항상 내 곁에 있지 못했어요? 그리고 늘 그렇듯,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난 아빠처럼 살기 싫어.'
나의 아이들이 그 정도 챌린지를 나에게 하는 것은 지극히 건강한 일이다. 이제 막 자기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이걸 지켜보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는 것,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빠인 나의 삶은 아이들이 전부여선 안 된다. 아이들이 독립해서 더 이상 아빠가 필요없게 되었을 때, 그 때도 나는 나의 생활을 유지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더 오래 자식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그들이 20대의 중간쯤 삶의 벽에 부딪혀 힘들어할 때, 어린 자식들이 전부였던 20년전의 아빠로 남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의 자식들이 혹시 전수받을 경험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그들 세대의 새로운 세상을 적극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아빠가 되려면, 나도 발전해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이들이 전부인 인생을 살아선 안 된다. 그래야 자식들이 완벽한 성인이 되었을 때 잠시만이라도 당당한 성인과 성인간의 부모 자식 관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전부인 인생을 살게 되는 순간, 나는 나의 한계에 아이들을 가두게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질문은 딱 하나다: "나는 자식들이 나처럼 살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나 스스로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나의 자식들이 나의 바램대로 그들의 인생을 살아 나간다면, 그들은 그들이 아빠처럼 살기를 원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질문을 그들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대를 이어서 이걸 반복할 수 있는 집안이 있다면, 그 가족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가문'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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