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전화를 못했다. 당연히 스마트폰은 없었고 통화는 아이들 엄마와의 전화로 이루어져 왔다. 그땐,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면접일을 제외하면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시간표에 따라 얼굴을 맞대고, 소중한 시간 안에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잘 지냈어?”
“응.”
“밥은 먹었어?”
“응.”
처음엔 거기까지가 대화의 전부였다.
웃는 얼굴이지만, 전처의 전화로 영상통화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전처의 전화번호 뒷자리가 성처럼 쓰여 딸과 아들의 또다른 이름들이 생겼다.
아이들이 내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 건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처음엔 용건만 있었지만 이내 이모티콘과 음성녹음을 자유자재로 쓰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질문이 하나 생겼다.
“아빠는 요즘 어때?”
그 질문을 들은 날은, 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던 일들을
아이에게 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너질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아빠는 눈이 작아, 같은 농담도 하게 되었다.
전화는 짧았다. 그런데 짧은 통화 하나가 내 하루를 바꾼다. 컨텐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질문을 기다리는 삶은 스스로 고요해지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며,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건 이혼했지만 한상 전화기 너머에 아빠라는 사람이 있다는 의식을 만들어 낸다. 그 전화 한 통이, 다른 사람은 모르는 방식으로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아이들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면
세상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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