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전처 혹은 전남편의 장례식에 대응하는 일에 대한 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혼한 부부 당사자들의 얘기였지만, 그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미 가족이 아닌 자들의 장례를 어디까지 참석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이 블로그를 찾아왔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다. 아이들이 결정한다. 아이들이 참석할 만한 장례이거나, 아이들이 직접적인 상주가 되는 일이라면 찾아가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관계없는 장례식장에 굳이 오갈 필요는 없다. 그게 간단한 대답이다.
하지만 오늘 다룰 일은 그것이 아니다. 이혼을 겪은 사람이 가족의 장례를 치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인간은 다음을 생각하게 되고, 장례를 치를 때에는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특히 이혼을 했다면,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있어서 미래를 고민하게 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없어서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하는 행동에도 차이가 생긴다. 적어도 30대, 대개 40대에 겪을 일이고, 장례식장에서 본인의 역할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조부모 혹은 부모 묘역의 관리비를 지출하고 있는가. 매장묘인지, 아니면 봉안당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장례비용을 지출한 액수에 따라 생각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윗세대가 하나둘씩 사라지면, 남은 세대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혼을 하면서 아이들이 있는 경우와 아이들이 없는 경우 고민의 내용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지점이 이 지점이다. 아이가 있는 이혼남은 아이를 생각하게 되고, 아이가 없는 이혼남은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같은 계기지만 생각의 내용과 핵심은 완전히 다르다. 이미 한 단계를 넘어간 사람과 아닌 사람은 고민의 지점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에 나는 곧 상이 있을 것임을 직감했고, 검정색 수트를 별도로 준비해두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수트가 잘 맞지 않는데 장례식용으로 적절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 경조사용으로 검정색을 브룩스 브라더스에서 별도로 주문했다. 검정색 옥스포드 슈즈까지 맞추었다. 수트를 픽업함과 거의 동시에 아니나다를까 부음이 있었고, 옥스포드는 아직 제작중이라 장례식에 신지는 못했다.
장례식 내내 나는 적극적으로 비용을 지출했다. 이동에 드는 비용이나, 승화원에서 쓰게 되는 음료 비용을 대고, 회사를 통해 장례물품을 지원받아 어머님께 도움을 드렸다. 차량을 동원하여 이동 편의를 제공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돈을 쓰는 것은 좋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부모님이 살아 있는 자식의 장례식장 집안 일은 부모님을 대표하는 일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식의 장례식장 집안 일은 집안 자체를 직접 대표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내 자식들이 케어해야만 하는 일들을 최대한 줄여좋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복잡한 상속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 혹은 있더라도 내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나의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혹은 부모님의 노후 문제는 없는지 꼼꼼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형제, 친척 사이의 분쟁을 정리하거나 연을 끊어버릴 계기이기도 하다. 선호하는 장례 방식에 따라, 가족의 산소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남겨진 재산에 대한 상속세와 재산분할 방식에 대해서 손을 쓸 수 있다면 더욱 더 좋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아직 결혼 단계에서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면, 애초에 생각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겨우 '관'을 하고 '혼'에서 막힌 사람이 '상'과 '제'를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순서대로도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결혼을 안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암흑 물질을 연구하는 일에 인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하고 연구에 열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결혼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다만 내가 이 정도 깊이의 고민을 해볼 기회가 없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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