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지난 번에 아빠 집에 놀러왔을 때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어떤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정글짐에 있는 공간을 다 독차지하겠다고 했을 때, 너는 잠깐 반발하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정글짐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아빠는 너를 불러세워 말했다. '너 왜 울면서 도망가냐?', '잘 모르는 녀석이 너한테 갑자기 못되게 굴면 도망갈거냐?' 라고 너한테 물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정글짐으로) 들어가서 싸워.' 라고 했다. 너는 이내 모래판으로 다시 진입했고, 성질 나쁜 그 녀석을 밀어 놀이터에서 격퇴했다.
잘했다.
아빠는 네가 그 녀석을 이상하게 생각해서 '에이 여기서 안 놀아야지' 하고, 조용히 스스로 물러나 다른 곳에서 놀았다면 네게 싸우라고 안 했을거다. 좋지 않은 것은, 네가 그 곳에서 놀고 싶었는데도 남이 못하게 한다고 해서 울면서 도망갔다는 점이다.
아들아, 세상은 너를 봐주지 않는다. 네가 울면서 도망가면 세상은 너를 비웃을 것이다. 너를 만만하게 볼 것이다. 지금 다섯살인 네가 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원하는 것이 있는데 울면서 물러서지 말아라.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걸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아빠는 너보고 다른 사람을 때리라거나 과격한 반격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지켜야할 상황에서는 반격하라는 뜻이다. 필요하다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않을, 다 같이 평화로운 세상을 철썩같이 믿는 부모들은 아빠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싸우라고 가르치는 것이 그만큼 이상한 얘기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도 정작 코너에 몰리면 자기 살 길을 찾을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 녀석이 네게 맞아 울고 나서 바로 다음에 한 일은 무엇이었느냐, 울면서 자기가 맞았다고 제 엄마를 불러온 것이 아니었느냐.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교육은 그냥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 녀석이 언제부터 네 친구였더냐.
아빠는 그렇게 놀이터에서 돌아와서 너와 함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우리 30분도 넘게 그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아빠랑 너는 분명히 그 녀석이 부당한 요구를 하고 네 눈에 먼저 모래를 던졌다는 적대적인 행동을 분명히 다시 기억해냈고, 그런 상황에서 네가 왜 울면서 도망가면 안 되는지, 가능하다면 응징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줄 수 있었다. 더구나 네가 먼저 '그래도 먼저 때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네가 해주어서 너무 대견했단다.
우리가 또 무슨 얘기를 했었나. 아빠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절대로 울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것도 이제는 남자 아이들도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가르체는 것으로 바뀌었지. 하지만 그 날 아빠는 '울면 지는거다' 라고 가르쳤다. 네게 울지 말라고는 안했다. 하지만 앞으로 살다보면 불합리하게 손해를 봐야하는 일들이 생긴다. 네가 해야할 의무를 다했다면, 그 때 네가 권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싸워서 이겨라. 필요하다면. 승리한 후에 남는 것은 네 것이다. 전부 가져라.
P. S. 딸아, 너는 이미 잘 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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