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아빠에게 엄격한 잣대가 되어주어 고맙다. 네가 아빠의 셔츠와 벨트, 바지 라인이 맞는지 검사했을 때, 아빠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네가 아빠가 가르쳐준 남자가 옷입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르쳐주자마자 아빠부터 검사해주어 고맙다. 아빠를 검사했듯이 다른 남자들도 검사하길 바란다. 아빠가 가르쳐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고, 네가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빠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아빠에게 딸은 언제나 어려운 존재다. 아빠가 겪어보지 못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고 네 엄마를 항상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와 체스를 두면서 자비를 기대하진 말거라. 그렇게 하는 이유는 네가 아빠의 실수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아빠가 하고 있는 일과 아빠가 해온 실수들, 앞으로 할 실수들과 하지 않을 일들까지 너에게 영향을 미친다. 너는 워낙 스펀지처럼 배우는 아이라. 빨리 배우기도 하지만 네가 깊이 배운다는 점을 아빠는 알고 있다.

네가 아빠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10배 이상을 네 엄마로부터 배운다. 엄마의 실수로부터도 철저하게 배우거라. 그래야 너만의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이유는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결과를 알고 있는 실수를 예방하고 한 차원 높은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네 부담감을 줄여주고는 싶어도 부담 자체를 줄여줄 수 없다. 아빠가 체스를 네게 져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아빠보다 훨씬 더 치사하고, 실수 없이, 잔인하게 승부를 걸어올 것이다. 반드시 큰 그림을 보아라,눈 앞의 나이트를 잡는 것보다 방어라인이 뭉개지는 것이 훨씬 좋지 않다. 아빠가 너를 거의 항상 이겨온 이유는 아빠가 항상 너를 포위하기 때문이다. 퀸이 다른 말을 답고 다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서로 다른 공격 자원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거라. 때로는 Inter-dependence가 중요하다.

딸아, 네게 뭘 가르치려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네가 그걸 배우는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빠가 너를 가르치려는 것은 그러한 시도가 아빠에게도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기억하거라.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의 반의 반도 실천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아빠나 엄마가 가르쳐주는대로 살면 안 된다. 엄마 아빠가 맘에 들어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라.

2025년 11월 17일 판교에서,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