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젯밤 운동을 무리한 탓인지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절름발이 걸음으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본다. 까칠한 얼굴이다. 통증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제 큰 일을 치른 탓일까. 성취감 후의 나른함이 나를 방심하게 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제 충실히 다했다는 생각에 다시 잠들었다. 재차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 10시반이 지나 있었다. 곧 가족들과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뉴스를 가지고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챙겨먹을 것들은 야무지게 챙겨먹었다.
분명히 나는 방심하고 있었다. 보통 오전 중에 사라지는 다리의 뻐근함은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확실히 어제 운동을 하면서 무리를 하긴 했나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그리고 뻐근한 느낌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다시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 이미 해가 진 후였다. 오늘 저녁도 운동을 하러 가야하는데, 다리의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일요일 저녁 푹 쉬자는 생각에 나는 그냥 내내 누워 있었다. 일말의 죄책감도 들었다. 지금도 일을 하는게 맞는데 하는 생각에 찜찜했지만, 아직 얼마 전의 독감 기운도 아직 덜 떨어진 상태고, 몸을 생각해 쉬기로 한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하루 쉬면 좋아지던 운동 후의 다리 통증이 아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운전을 삼가던 나는 도저히 회사 셔틀을 타고 걸어서 출근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통증은 조금씩 심해졌다. 아픈 발을 쳐다보았다. 부어 있거나 빨갛게 변색되지는 않았는데, 조금씩 열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렵게 출근을 하고 나서 점심시간에 회사 계단실을 오르내릴 때 나는 아픈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이 통증 심상치 않다.
덕분에 오후 내내 커피도 안 마시러 가고 앉아서 근무를 했다. 할 일은 많았다. 찾아서 하면 시간은 금방 가기 마련이나, 통증에 영 신경이 쓰였다.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뜨거나 프린터까지 걸어가는 것이 불편할 정도고, 다른 사람들도 뭔가 내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운동을 좀 잘못한 모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미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앉아 있는 동안에도 간헐적인 통증 때문에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검색창에 발목염좌나 발목터널증후군 같은 것을 검색하고 있었다. 세 시가 되지 못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전을 하면서 액셀을 밟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발의 통증은 조금씩 더 심해졌다. 집 근처의 정형외과를 찾았다. 족저근막염일까? 저는 걸음걸이가 점점 심해져 무릎에도 무리가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병원에 접수하면서 발목에 통증이 심하게 있다고 말했고, 평소에 무릎에 시큰거림이 있어 아예 온 김에 거기고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 대기실에는 정형외과 의사가 출연한 티비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꽤 자주 출연하는지 여러 프로그램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미리 신발끈을 풀고 있었다. 신발 끈을 풀지 않고 신발을 벗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은 악화되어 있었다. 가방까지 짊어진 나는 이제 거의 똑바로 서 있지 못했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증상을 설명했다. 예전에 사실 이 병원에는 허리 점검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다. 허리에는 이상이 전혀 없으니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를 할 때 복압벨트를 하고 운동을 하는 정도의 주의만 하라고 했었다. 간단하게 증상을 설명하고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무릎 앞 뒤와 발목을 타겟으로 한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다시 절룩거리며 나와서 의자에 털썩 앉아 진료실에 다시 들어갈 시간을 기다린다. 난 평정심을 잃고 있다.
진료실에 다시 들어가 엑스레이를 걸어 두고 한참을 돌려보던 의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염증이 생긴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도 사진 속의 피사체에 정렬이 이상하지 않다. 의사는 내게 혹시 요산 수치가 얼마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차 싶었다.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잿더미로 만든 뒤 소금을 뿌려 초토화시킨, 아프리카를 제패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노년에 원로원에 출석할 때 퉁퉁 부은 발을 질질 끌며 나타났다는 글 귀에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2023년 1월, 나는 통풍 진단을 받았다. 요산 수치가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체중이 나가지만 상당한 골격근 양을 유지하고 있고, 혈압도 정상이고 혈당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상의 경계 아래 있었다. 요산 수치를 운동을 하고 체중 조절을 해서 낮출 수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뇨과 고혈압, 통풍의 세트를 피해갈 수 있다고 믿었던 나는 결국 통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의사는 당장의 스테로이드 응급 처방과 혈액검사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콜킨을 처방받았다.
집에 들어온 나는 우울했다. 식사를 권하는 어떤 말도 반갑지 않았다. 맨밥에 김만 먹고 찬물을 들이켰다.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말없이 방문을 닫았다. 물을 한 잔 더 따라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30분쯤 지나자 놀랍게도 주사 처방과 약의 효과인지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요산 결정이 조금씩 혈관을 떠돌며 신장과 혈관벽을 갉아먹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하다가 조금만 다치거나 수분 섭취가 줄어들어도 통풍의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약값을 감당해내야 한다. 얼마 안 하는 약값은 없다. 약값은 지출하면 할수록 늘어나고, 나는 아주 조금씩 느리고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다. 췌장암으로 졸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그는 진단 이후 석 달만에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이 나을까 나의 천천히 오는 죽음이 나을까. 눈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들어오고, 눈물이 왈칵 난다. 나 스스로 아빠 곰은 뚱뚱하면 죽는다고 썼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염증이 나의 몸을 점령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몇 년 전 살을 빼겠다는 생각에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했다. 살이 꽤 많이 빠졌고, 살이 몇 킬로 다시 쪘다. 문제는 내가 저탄고지를 너무 오래했고 상당량의 근육량을 잃었다는 점이다. 근육량이 줄어들고 부담이 되자, 나는 골격근량을 다시 늘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햇고, 지금은 50 kg 이상의 골격근을 얻었다. 하지만 단백질 위주의 식단은 어쩌면 몸에 또다른 무리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40대에 접어든다. 더 이상 내 몸은 운동하는대로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렇게 덜컹덜컹 움직여져도 어딘가 다른 곳이 고장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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