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아빠가 러시아어 시험을 본다고 너희에게 공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아빠는 그걸 실행해 옮겼다. 시험 성적이 안 나올 것은 알고 있었다. 러시아어 시험은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에 대한 아빠의 첫 시험이고, 러시아어 OPIc 오픽 시험 등급 NM을 받았다.

원래 아빠의 목표는 IM이었다. 하지만, 등급은 상관 없단다. 일단 지금 현재 아빠의 실력을 알아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고, 성적이 안 나올 것을 알면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빠의 승리였다.
아빠도 사람이라 시험 며칠 전, 시험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성적이 안 나올텐데 응시료를 지불하는 것이 효과적인걸까, 조금 더 준비해서 두 달 정도 후에 다시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한국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세월을 보낸만큼 시험 성적이 두려웠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이 시험을 봐야 한다라는 생각에 표정을 바꾸고 그냥가서 시험을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영어 시험을 보러왔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어 질문들은 아빠가 얼마나 러시아어를 우습게 봤는지알게 해주었다. "이리나"의 러시아어 질문만큼도 말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질문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아빠는 꿋꿋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게 첫 질문이니까.
그 다음 질문에서 아빠가 어디에 누구와 사는지, 어디로 출당이나 여행을 가봤는지, 아빠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 질문들이 흘러나왔고, 아빠는 그 질문들을 꼬박꼬박 두 번 듣고, 더듬대다가 NEXT버튼을 눌렀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아빠는 러시아어를 어느 정도 해야, 무슨 단어를 적어도 쓸 수 있어야 기본적인 러시아어 말하기가 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너희들과 잠시 슬램덩크를 보았던 적이 있는데, 기억하니? 너희들이 주의 깊게 보지는 않았겠지만, 전국대회 진출에 실패하고 은퇴한 변덕규가 전국대회 경기에서 고전하는 채치수에게 하는 말이 있다. "부딧혀라. 실패해도 너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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