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헤어질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가. 혹은 오래된 친구와의 절교를 선언하는 날도 좋다. 그 날 일어나서 아침에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시기 전부터 뱃속이 뒤집힌 것 같은 그 더러운 느낌말이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너무 잘 알고 있고, 무슨 말을 할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략적인 플랏은 이미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상태로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혈관 속으로 철사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거지 같은 기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날 때 가벼운 기대와 흥분이 있는 것처럼, 사람을 잘라낼 때의 느낌도 그렇게 살짝 뉘앙스만 있다면 좋을텐데, 그게 그렇지가 못하다. 그렇다고 그 느낌이 잦아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느낌이 내가 사람으로 살아 있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팀으로 만나거나 일하는 관계에서 만나는 사람들 말고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더러운 기분이지만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나는 이미 당신들이 나를 친근한 관계로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만 머리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가슴 속 깊숙이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빚진 것이 없다. 사람들은 늘 나의 호의를 가볍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의 적의는 늘 가장 비싼 가격을 청구한다.
처음 팀에서 사람을 내친 것은 20년전이었다. 술이 문제였고, 팀을 내팽개치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 있는 사람을 멤버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가 돌아오는 것을 막지 않았고, 조용히 다른 멤버를 물색했다. 그리고 문제의 사람이 돌아왔을 때, 나는 그를 내보냈다. 별다른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새 멤버는 10분뒤에 팀 미팅에 합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년후의 일이다. 그렇게 들인 새 멤버가 다른 멤버들과 나를 배제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는 10년 동안 함께 일한 나의 고등학교 동창도 있었다. 나는 당시 내 여자친구를 포함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미 그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했던 챌린지를 기억한다. '나는 네가 충분히 네 입장을 다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인과의 헤어짐도 마찬가지였다. 이 블로그에 기록된 것이나 기록되지 않은 것이나, 헤어짐을 말하려는 자리에 나갈 때는 항상 무대에 올라가는 것 같은 긴장감과, 불안인지 저혈당 증세인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동반되곤 한다. 손은 떨리고, 눈빛은 불안하지만, 항상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할 때, 나는 상대방의 눈을 보았다.
이제 한 번 더 그 일을 하려고 한다.
안 된다고만 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는 없다. 함께 일할 거리를 주어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서로 같은 길을 가지 않는 편이 좋다. 함께 하다가 다른 사람 탓을 실수를 했음에도, 그 실수에 대한 변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변명이라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해명으로서 상황을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 말이 필요하다. 추궁하기 위해서가 사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음 비슷한 상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알기 위하여 양해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왜 논리적으로 차갑게 내가 추궁하면, 왜 화를 내는가라고 묻는다. 어쩌면 비정하거나 심지어 비열하게 들렸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쌓아놓은 업을 한 번에 추궁받으니 당황했을 수도 있지만, 그 황당함의 크기만큼 나는 이미 기회를 주었다. 장장 4년동안이나 말이다. 경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분명히 2년전 문제의 여자를 팀에서 치웠을 때, '너도 조심해.'라고 경고했다. 참고로, 그와는 달리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첫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미 이 사람의 백그라운드 체크를 통해 현황을 다 알고 있다. 그이도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이미 상황체크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정상이다. 아직 모르고 있다면, 그건 내가 그를 찍어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는 셈이겠다.
나는 매달리는 연인도 보았고, 내가 매달려도 보았고, 저주를 하거나 받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다 괜찮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이 성과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상처를 받는 일이 별 것 아닌 일이고, 과정해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별 것 아니다.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죄책감에 나는 관심이 크게 없다. 이틀 정도 지나고 몇 번 샤워를 하고 나면 끝나는 일이니까. 누군가를 적으로 돌리고 나서 문제가 되는 일이려면, 고객을 상대로 불특정다수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힘 센 고객을 건드렸을 때 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준 것을 스스로 대단히 여겨야 할 정도로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