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여혐, 남혐, 이혼 후 최악의 선택인 이유

싱글맨 2022. 9. 2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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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뿐만 아니라 아주 좋지 않은 커플 간의 이별 이후에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관계에서 얻은 안 좋은 경험이 혐오로 빠지는 것은 안타깝게도 안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다. 전배우자나 전애인에게 심하게 데었던 사람이 혐오에 빠지는 것이 당연(?)할 지는 모르겠으나 과도한 싫어요는 무조건적인 좋아요만큼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싫어하면 내 상황은 나아지는가?

몇 년씩 이혼소송이나 정신적 피로에 시달린 사람이 분명히 할 수 있는 선택이긴 하다. 마음의 상처가 깊고 아직 상대방에 대한 전의가 남아 있을 때 '싫다'는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 '싫다'의 감정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더 넓게는 당사자와 같은 성을 지닌 사람 전체에게 투사할 때 나타난다. 전남편이 미운 나머지 모든 남자를 미워하고 전부인이 싫어 모든 여자를 미워하는 감정은 소셜 미디어와 주류 미디어를 타고 확대증폭재생산된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에게 행사하는 가스라이팅부터 강력사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쉽게 사회에 퍼진다. 지난 대선에도 드러난 일이지만, 남녀 성대결의 구도가 정치에도 이용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 현상을 뭐라고 부르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그걸로 밥먹고 사는 사회학자들에게 현상을 교리로 설명하는 일을 맡겨두자. 문제는 당장 나의 생활이다. 이별 혹은 이혼 이후의 나의 삶이 혐오로 나아지는가.

이혼 이후 남혐이나 여혐에 빠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청소년기 혹은 아동기로의 정신적인 후퇴에 가깝다. 이혼을 한 이후에도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아야 한다. 때로 이해관계 때문에 다시 싸우거나 힘을 합쳐야 되는 일이 늘 발생한다. 다른 성과 문제가 발생해서 일이 틀어질 때마다 전배우자를 떠올리면서 혐오의 감정을 되살려낼 것인가. 그게 과연 나에게 힘이 될까.

이제 마흔을 지나고 있는 나이에 생각을 해보면, 내 입장을 어필하거나, 내가 피해자거나, 화를 내야할 때에도 조금도 조용한 접근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논리적인 대응의 영역이라면 논리적으로 대응하면 되고, 감정적인 대립이거나 힘의 대립이어도 성을 내거나 혐오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차갑게 협박하는 것이 더 나에게 좋은 대안인 경우가 많았다. 

전남친 전여친 전배우자를 싫어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와 대립하는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할 필요도 없다. 복수심을 가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감정을 감정의 원인이었던 문제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은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다. 내가 이혼남이라고 해서 여성 전체를 적으로 돌려봐야 양육비를 벌 기회나 줄어들 뿐이다. 

좌절된 남녀관계에서 오는 대립과 범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건 그냥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자. 세상이 망하든지 말든지 나는 나의 이해관계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혐오를 멀리하는게 좋겠다. 혐오에 내 감정이 가깝게 있을수록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문제에 내가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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