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 미술관에 가다.
주기적으로 미술관에 간다. 리움 멤버십이 있고, 미술관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 이외에 다른 형태의 예술에도 예민하게 구는 편이다. 예술가는 항상 현재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미래를 예측하려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개의 경우 성공적이지 않다. 이혼남인 내가 미술관 멤버십을 유지하면서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그들이 보려 하는 미래에 내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고미술이 훨씬 인상적인 경우가 많다. 생각보다 시대정신의 첨단을 달리는 예술가는 많지 않다. 그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좋아했던 드림 스크린 전시를 혼자 조용히 다시 들어가 본다. 아이돌에게 아이돌의 공식과 매너리즘이 있듯이, 전시를 준비하는 예술가에게도 매너리즘이 있다. 드림 스크린에서 볼만한 작가는 하나 둘 정도였다. (게릴라 라디오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가 있긴 했다.)
2024년 하반기 리움 전시는 예술가들이 현대 사회와 앞으로의 시대에 오는 기술적 진보에 대한 두려움를 극복하지 못했고, 아직 인간의 인식 한계와 미디어의 관성을 뛰어 넘지 못하고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질의응답 시간에 내가 한 예술가에게 묻는다.
Q: "2차원의 스크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예술은 있는가?"
A: "실제로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프로젝트를 위한 스크린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작품에 오디오 드라마나, 시청각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감각 표현 방식을 추가하는 시도를 했었다."
실패했다는 얘기다. 미디어를 추가하거나, 새로운 임의의 표현 차원을 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런 실패를 비난하고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더 최악은 환경이나 생태주의, 여성주의 같은 이념에 젖은전시와 기획들이다. 실제로 그런 기획이 너무 많고, 리움에서 멤버십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기획자가 이런 이념에 푹 젖어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야유를 보낸다.
곧 리뷰할 책에서 어떤 작가가 한 말이다. '사람을 설득하기 뒤해서는 논리가 아니라, 이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비슷한 말이 손자병법에도 나왔던 것 같다. 어떤 이익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것이 인간이고, 그런 면에서 이념은 그 정의에 따라 실패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미술관을 빠져나와 우육미엔에서 면을 씹어 삼키며, 문자로 온 사후설문에 적나라하게 대답을 한다. 전시에 참가한 작가는 실패했고, 기획자는 이론에 빠져 있으며, 아티스트를 따라다니는 그루피들과 이런 기획을 준비하는 미술관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데 얼마나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지. 차라리 벤처 캐피탈과 테크 회사의 경영진이 훨씬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