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곰은 뚱뚱하면 죽는다. (이혼남, 무조건 건강을 지켜야 하는 3가지 이유)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도 뚱뚱해, 아기 곰은 너무 뚱뚱해......'
곰 세 마리 가사를 바꿔 불렀다가 전처에게 처맞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부부 사이에 크게 문제가 없었고, 장난으로 부른 번안 가사의 동요였지만, 사실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182 cm 정도의 키 때문에 멀쩡한 것 같지만, 조금만 먹어도 몸무게가 늘어나고 건강이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해가 바뀜과 함께 본격적인 40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몸이 고장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머저리 같은 상사는 면담을 한답시고 시간까먹으면서 '괜찮아, 원래 나이들면 조금씩 망가져...'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위로랍시고 하고 있는데, 지금 그런 영양가 없는 말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다.
이혼남에게 몸을 방치하고 건강을 소홀히 할 여유는 없다.
이혼 직전 별거를 시작할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전)처가로 모두 나가버려 혼자 집에 있었던 밤 나는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혼자였고, 천운이 따라 혼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음에도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입에는 튜브를 물고 중환자실에서 의사들이 단체로 내려보는 와중에 깨어났다. 그게 벌써 2년전이다.
제일 먼저 감행한 일은 전처를 병원에서 몰아내는 일이었다. 이혼 절차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는 상태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당했기 때문에 배우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전처가 주치의와 얘기해서 내 상태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주치의와 간호사에게 경고했다.
'이혼 절차를 밟을 생각이니, 만약 내 허락없이 의료정보를 이혼상대자에게 누설할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
환자-의사간의 비밀유지 관계를 동원해 나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해야 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이제 더 이상 배우자에게 휘둘리는 생활은 허용하지 않겠다. 병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중환자실에서 금식을 해야 했던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심장 관련 검사는 다 마치고 퇴원해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주치의보다 건강하고, 검사상 소견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은 없다.
그 때 이미 쓰러지기 전부터 다이어트 중이었고, 금식을 3일 넘게 하면서 체중이 확 줄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내 몸무게는 부끄럽게도 슬금슬금 다시 올라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정기건강검진에서 결국 2년만에 다시 적신호가 들어왔다. 심근비대, 당뇨와 고혈압 전 단계. 2년 전에 나를 중환자실에서 깨워냈던 의사가 말한다: '심장에는 여전히 이상은 없다. 다만, 피에 기름이 좔좔 흐르니 그건 뭔가 해야하는 상황이다.' 반성할 일이다.
물론 건강을 지켜야 하는데는 굳이 이유가 필요없다. 하지만 이혼을 겪은 입장에서 내가 반드시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이혼 이후에 맞은 두 번째 기회를 잃는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혼은 내게 두 번째 기회이다. 결혼 전과 결혼 생활 중에 했던 내 실수를 고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아주 어렵지만 그래도 실수를 극복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다. 지금도 나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쓰러지던 당일날,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복 직후에는 아예 혐오반응이 오기 때문에 못 먹었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떤 종류의 술이건 입에 대지 않는다.
나는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다. 덤으로 사는 삶, 기회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다. 만약 당신도 이혼을 경험했다면 비슷한 생각을 한 번 해봤을 것이다. 지금 다시 건강을 잃어선 안 된다.
2.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나를 잊을 것이다. 그건 그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아주 강렬한 기억이 아니라면 어렵다. 아버지의 존재는 쉽게 잊히고, 아버지의 부재만이 그 아이들에게 남겨질 것이다. 입학과 졸업, 좋은 날과 나쁜 날에 함께 기뻐하거나 위로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원히 그들의 인생에 없다. 아이들에게 못할 짓이다.
더욱 오기가 날 이유, 나의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이제 당신이 멀게 느끼는 전처와 처가의 가치관과 가풍만 그 아이들에게 전수될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이제는 싫어진 전처만을 닮아간다는 사실이 억울하지 않은가. 아직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이혼했다면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점 억울하지 않은가. 혹시나 나중에라도 가지게 될 미래의 당신의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다는 것 억울하지 않는가.
혼자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도 나의 행적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했던 실수들을 말해주고 아이들이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기회도 잃을 것이다. 그건 견딜 수 없다.
3. 내 재산이 전처에게 넘어간다.
이건 아이들이 없는 경우라면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은 아이들에게 분할되어 상속된다. 내게도 형제가 있고, 노부모를 모시고 있기도 하다. 유언장을 따로 작성해서 그들이 상속할 수 있게 조치가 가능하지만, 독한 전배우자라면 아이들의 친권자이자 양육권자임을 내세워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지만, 이미 나이가 들고 법률적으로 충분히 경험이 없는 내 주변 가족들이 내 재산을 지켜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재산이 상속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적인 권리는 성인인 아이들의 친권자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진 대부분의 재산은 아이들의 이름을 빌어 전처에게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 억울하지 않은가, 제대로 기회를 살려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당신이 지금까지 모아 온 재산들은 전부 전처에게 돌아간다.
아빠 곰은 뚱뚱하면 죽는다. 나는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3가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