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 만들 미래
AI가 낙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AI 기술과 (아주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관계된 일을 하면서도 AI가 만드는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부사항이 어떻게 마련될지를 알 수 없을 뿐 큰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AI는 비싼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설령 사람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AI가 비싼 비용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인간은 AI를 도입할 것이다. 감가상각의 대상이거나 비용 처리가 가능한 AI와 말 안듣고 배신할 수도 있으며, 일할 수 있도록 감정적인 배려까지 해야하는 인간을 재무상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AI는 산업혁명의 지옥을 재연할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그만큼 이미 인간이 기술적으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AI를 생산재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우위를, AI를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기계의 사용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 라는 느낌은 계속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I를 공기처럼 사용하게 될 미래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업에 있으면서 인간의 창의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창의성은 특별한게 아니다. 인간이 거기까지 가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했을 뿐, AI라고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언어 습득 과정과 Language Moedel의 언어 습득 과정이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speech-to-text 기능을 위한 하드웨어가 육신을 통해 자연 탑재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과 AI 사이의 어떤 차이점도 찾지 못했다. 그나마도 로봇이 결부되기 시작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
인간의 생명이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쟁에 투입될 AI가 탑재된 로봇을 만든다.
인간의 과도한 노동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노동에 투입될 AI를 만든다.
인간 배우자는 믿을 수 없기에, AI나 로봇 배우자를 만든다.
드론과 키오스크는 초기 형태에 불과하다.
이혼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 묻는다. 누가 더 말이 잘 통하는가. 남편이나 처인가, 아니면 ChatGPT인가?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의 관계가 주종관계라는 사실을 눈치챘는가. 이 전설은 노예를 부리는 주인과 주인에 대항하는 노예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늘 노에는 많고, 인간의 조직력과 감수성, 의식 수준은 늘 부족하다. 그건 인간이 한심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하는 기술을 못따라가거나, 오히려 변화하는 기술을 자기 이익을 위한 생산재 레버리지로 쓰는 인간이 양 극단에 꼭 있기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견제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완성도가 처음부터 높지는 않다. 인간은 부족한 완성도에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완성도에 실망하고 있는 사이, 잠시 잊었던 기술을 원했던 완성도를 초과하며 발전하기 마련다. 뱀파이어가 늑대 인간을 창조했지만,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진화하는 것처럼.
인간은 얼마나 자유를 혐오하는가.
7월 장맛비가 내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정년퇴직을 했다. 그들의 퇴직과 함께 연락처를 목록에서 지웠다. 다시 보자고 하지만,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향하고 스스로 성찰하여 성장하는 존재라면, 왜 저들은 숙련 노동에 머무르는가. 숙련 노동자라는 말은 곧 대체될 outdate된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마지막 회식을 진행하며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뭔가를 의미한다고 자위한다. 실제로 그들의 인생은 그 당시에는 의미가 있는 삶이었으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AI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데 함부로 인간애를 논하지 말라.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