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이혼남인 내가 결혼과 연애 시장을 계속 주시하는 이유 (feat. 영화 나폴레옹)
이혼을 하면 당장은 결혼이나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은 상황을 정리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재혼을 바라거나 연애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만큼 쓰린 상처는 오래 가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요새 연애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결혼 시장의 분위기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간단한 데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연애를 하거나 다시 결혼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10년후에 내 자식들이 연애를 하는 시기가 되고, 20년 후에는 결혼시장에 들어오게 된다. 격감한 결혼과 급격히 위축된 출생율은 나의 아이들, 다음 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10년, 20년은 40대인 내 입장에서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눈 감았다가 정신차리면 지나가는 시간이란 말이다. 내가 매년 3월말에 집계되는 결혼-이혼 통계를 유심히 지켜보는 것도, 이미 우리나라에도 만연한 남녀갈등을 분석하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나와 내 아이들의 생활에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서로를 싫어하고, 경제적인 이유나 이념적, 문화적인 이유로 결혼이 줄었을 수는 있어도 "짝짓기"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비혼주의라고 부르거나, DINK 라고 부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인간도 생물이다. 생태계에 적응한 사람이 유전자를 복제한다. 비루한 인간의 문화가 수만년의 생물학적인 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지금까지 나는 흔히 말하는 레드필 ("Red Pill") 컨텐츠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어 왔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이건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블로그에서 다루게 될지는 모르겠다.) 포인트는, 나 스스로 어떤 트렌드를 대표하지는 않다는데 있다. 나의 연애 생활, 아버지로서 나의 모습, 내 아들과 딸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자녀를 갖는 일이 중요하지, 남성이 옳으냐 여성이 정의로우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 아이들이 자녀를 원할지 원하지 않을지 어떻게 아냐고?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누군가 자녀를 원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평균 이상의 경제적 안정이나 일정 수준의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는 증거다. 아버지로서 내가 할 일은 내 아이들이 자녀를 원할 정도로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만약 내 자식들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건 내겐 슬픈 일이지만, 내가 대비해야 할 우선 순위는 아니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 비혼을 선언하거나 대한민국이 인구 감소로 망하거나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약자나 약소국은 역사적으로 항상 도태되어 왔고, 전세계적으로 인구 감소가 추세가 된 것을 내가 바꿀 수는 없다. (아직도 나 한 사람의 행동이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디즈니를 너무 많이 봤거나, 가능성과 확률의 개념을 착각하는 사람이다.)
연휴가 시작하는 날, 혼자 영화 나폴레옹을 봤다. 이 영화는 나폴레옹의 군사적 성공에 대한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사는 영화의 배경일 뿐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결혼이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결혼과 관계 (Relationship)이 영화 전면의 주제이고, 개인적으로 주연은 나폴레옹 역의 호아킨 피닉스가 아니라, 조세핀 역의 바네사 커비라고 생각한다.
사진 속의 서명하는 손은 나폴레옹 역의 호아킨 피닉스의 손이다. 두 아이를 둔 싱글맘과 결혼하는 나폴레옹은 조세핀이 어떤 여자인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본인의 Mommy Issue를 해소하고 싶어했고, 조세핀은 당장 죽은 남편을 대신해 본인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결국 이혼한 이유도 간단하다. 후계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사에서 유명한 이유는 아무 것도 없는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하여 황제에 까지 오른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군사력이외에도 나폴레옹은 유럽의 유수 귀족 가문이나 왕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의 계보 안정을 원했고, 그 목적으로 조속한 후계 구도의 확정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이혼은 후계짜라는 결과물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성공한 사람이 집안을 따지게 되고 특히 결혼에 있어서 보수화하는 이유는 축적된 권력이나 자본이 안정적으로 계승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아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지켜볼 시간이 있다. 하지만, 딸 아이의 결혼은 당장 이 녀석의 고등학교 시절 교육부터 영향권에 들어간다. 딸 아이를 위해서 내가 모든 것을 만들어 놓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나는 내 딸이 겪게 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내 딸이 출산을 원할 경우, 최적의 출산 시점에 맞추어 대학 학부 진학과, 입시까지 스케줄을 역산하여 테크트리를 제시할 의무가 아빠인 나한테 있다. 선택은 내 딸이 한다. 하지만, 각 옵션의 장단점과 한계는 내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연애는 내 아들과 관련이 있다. 연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아들이 이혼 이후에도 연애를 액티브하게 하고 있는 아빠와 그렇지 않은 아빠중에 어떤 모습을 더 바람직하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물론 내 연애는 내가 선택한다. 하지만 아빠의 연애에 대한 아들 딸의 시선은 나의 연애 자체가 아이들에게 교보재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궁극에는 나의 딸과 아들이 아빠와 엄마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연애 시장과 결혼 시장을 주시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