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직주근접의 달콤함

싱글맨 2023. 6. 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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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퇴근을 하면서 직주 근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도어투도어로 15분 안 쪽으로 끝내는 출퇴근 길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까지 뭐한다고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오가면서 길에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뿌렸나. 오늘처럼 비가 뿌리는 날이면 그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 

비오는 퇴근길

직장이 아무리 힙한 동네에 있어도 직장은 직장이다. 사무실과 내 방의 거리는 적당히 떨어져 있는데 좋지만,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 지하철로 15분이 걸리는 위치와 걸어서 15분이 걸리는 위치를 구분하지 못한다. 걸어서 15분 떨어져 있는 거리도 더운 날, 추운 날, 비오는 날 가려가며 출퇴근길이 얼마나 힘든지 불평하는게 인간이지만, 한편으로 이동에 필요한 비용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느끼기도 한다. 

출퇴근에 들어가는 비용이 경제적 독립을 막는 중요한 지출 항목이다. 출퇴근을 한 번 겪으며 '집에 가서 뭘해야지' 라는 의지가 쇠약해지고, 다시금 의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출퇴근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실 생각보다 정교한 환결 설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하는 일정과 근무 형태에 따라 이 환경 설정은 대단히 취약한 경우가 많다. 

다니는 것이 불만일 수 없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불평 자체가 사치일 수 있는 것이겠지만, 한 편으로 '내가 한 번이라도 이 출퇴근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군다나 재택이나 공유오피스를 이용한 원격근무가 잘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의심은 증폭된다. 원격근무의 시기가 끝나고 다시금 온사이트(on-site) 근무를 선호하게 되는 분위기겠지만, 사람은 한 번 달콤한 맛을 본 이상 그걸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사내 셔틀이 잘 되어 있어도, 이동거리에 따른 피로감은 남는다. 시간은 여전히 최소한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미 머릿 속은 복잡하다. 낮에 다니는 직장과 밤에 다니는 직장이 따로 있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다. 얼마나 많은 한부모들이 양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투잡을 뛰고 있는가, 저 남는 두 시간 동안 잘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쉬거나, 임장을 가거나, 내 투자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을 갖는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내가 그 시간에 배달이라도 한 건 더 한다면. 내가 그 시간에 온라인몰에서 뭐 하나라도 더 판다면. 

이런 생각들은 금방 부동산 시장에 반영될 것이다. 네트워크의 허브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크다는 것을 안 순간, 조금씩 그 변화의 바람이 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죽었네 살았네 하지만, 그건 위치가 주는 이점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없이 대세 상승과 하락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직주근접의 효율을 누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제 파견 근무도 끝나 다시 시도 경계를 넘어 출근해야 하겠지만, 이 위화감을 잊지 않도록 기록해둔다. 분명히 지금은 나보다 남에게 더 돈이 벌리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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