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나도 이와 같은가

싱글맨 2023. 6. 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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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고 앉으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남았던 일회용컵을 정리하려고 했다. 얼음이 녹아 컵에 물이 고여 있어서 여느 때처럼 물을 버리고 재활용 쓰레기로 처리할 심산이었다. 물을 따라 버리려고 뚜껑을 열었을 때 의외의 물체를 발견했다. 

얼음물에 파리가 빠져죽었다.

사무실에 가끔 파리가 들어오곤 한다. 한마리가 내가 남겨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뚜껑에 앉았다. 늘상 그렇듯 손을 비비며 두리번거리다가 리드의 빨대구멍을 보고 들어갔으리라. 뭔가 맛잇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파리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까.) 얼음 위에 앉아 보았지만, 뭔가 영양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걸 깨닫고 나서 문제가 생긴다. 좁은 빨대 구멍으로 어찌어찌 들어갔으나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다시 날아 자세를 잡고 출구로 나가려고 해도, 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좁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차가운 얼음의 냉기도 있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위험은 배가된다. 얼음이 조금 더 녹는다. 물이 컵 안에 고이고, 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파리 입장에서는 투명한 컵도 도움이 안 되었으리라.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에서, 뚜껑 방향으로 뭔가 밝고 어두움의 차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없다. 얼음은 점점 녹아 물이 된다. 그러다가 파리가 자세 제어를 하기 위해 날개를 펴고 얼마지나지 않아, 날개가 물에 젖는다. 한 번 몸이 젖은 파리는 다시 날 수 없다. 물은 여전히 차갑다. 싸늘한 기운이 운동 성능을 떨어뜨린다. 

익사한 파리의 사체를 본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나의 머릿 속으로 어떤 생각이 지나간다. 잘못되어가고 있는 결혼 생활을 하던 나의 상황이 저랬을까. 

세상에는 함정이 많다. 수렁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결혼도, 끝이 뻔한 직장생활도 다 똑같은 함정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젖은 날개 한 쪽을 떼어주고 뚜껑을 통과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멀쩡한 모습으로 나오는 확률은 아주 낮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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