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나에게 집중할 뿐,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싱글맨 2023. 1. 6. 20:37
반응형

쇼핑몰에 오는 건 물건을 구경하고 사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오면 다른 사람을 구경하게 된다. 평소에 일하는 관계 외의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나로서는 불특정 다수와의 얕은 스침이 일어나는 기회가 된다. 어린이들을 만나고, 부부나 커플을 보게 된다. 나는 섣불리 그들을 판단하려 하지 않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들을 관찰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쉽게 판단한다. 이혼한 이후 특히 이혼남이, 이혼녀가, 싱글말이, 한남이 어떻다더라하는 전형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를 많이 본다. 나  스스로도 그런 일반화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티비에 등장한 이혼을 겪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연예인이거나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이었다다.' 꽤나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그냥 내 의견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잡한 존재고, 사랑도 찾고 티비에도 나오고 님도 보고 뽕도 따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누가 알겠는가. 이혼한 연예인들의 예능은 무가치한가. 그렇지 않다. 내가 추구하는 재미와 거리가 멀 뿐 그것도 예능이고, 어떤 사람에겐 소소한 재미다. 

쇼핑몰에서 드러나는 커플의 소비 의사결정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의외로 쉽게 드러나는 것이 그 커플이 커플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이다. 소비를 위한 그들의 논의를 지나가면서 듣게 되면 그들이 사회의 어느 정도에 스스로들을 포지셔닝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단순하지 않다. 가격을 적절하게 수위 조절해서 정하면서도 사회에서 그들의 위치가 드러나도록 소비를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포지션은 주차장에서 여지 없이 드러난다. 트렁크에 들어가는 물건과 차종과 행선지가 그들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사람 군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쇼핑몰에서 소셜 미디어로 들어오면 페미가 어떻네, 이혼남이 어떻네하는 류의 글들을 다시 보게 된다. 지친다. 그런 의미에서 쇼핑하면서 사람을 구경하는 건 굉장히 건강한 면대면 상호작용인 셈이다. 저들을 잘 모르지만 뭔가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이들 식사를 챙기는 가족과 세련된 딩크족을 지향하는 신혼 커플의 식사는 같은 식당에서도 사뭇 다른데, 어떻게 한 마디로 한녀가 한남이, 이혼남충이 이혼녀가 어떻더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남이 어떻더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몸은 아프지만, 건강한 아빠이고 싶고, 사려 깊은 선물을 하고 똑바로 내 앞가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한 실수를 굳이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싶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거나 억지로 뭔가를 가르치지 않는 아빠이길 희망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힘들더라도 쉬운 소비나 내가 우너하는 것과 거리가 먼 낮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이번 겨울 나는 특별히 새해 목표를 세우거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여행은 이미 11월에 다녀왔고, 나의 임인년과 지난 12년은 11월 제주 앞바다에서 모두 끝났다. 나의 새해 목표는 이미 서 있고, 팀도 이미 꾸려져 있다. 이제 실행만이 남았기 때문에, 나는 굳이 지는 해를 보러가거나 해돋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노을은 매일 지고, 나는 해돋이를 보러 나가는 사람들을 단죄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 관계에 신경쓰는 인생 마지막 몇 해가 되지 않을까. 




반응형